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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부양의 희생양이 된 ‘푸어족’과 사회재생산의 위기 (송명관 참세상 기획위원) 조회 : 161
작성자 : 약탈경제반대행동 작성일 : 2018/01/08
첨부파일 1 : 가계부채 토론 발제문.hwp

내수부양의 희생양이 된 ‘푸어족’과 사회재생산의 위기

송명관(참세상 기획위원)



1. 가계부채 내수부양의 주춧돌인가? 희생양인가?

가계부채 1100조 시대. 이제 가계부채문제가 심각한 사회적으로 부각된 지도 이미 5년이 넘었다. 금융위기 후폭풍으로 2010년부터 집값이 하락하고 건설사 미분양이 폭증하면서, 정부기관을 비롯한 여러 민간연구소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지목하기 시작했었다. ‘하우스푸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회화된 것도 그 당시부터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책은 대부분은 낮은 이자로 갈아타게 해주거나 만기상환을 연장해주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가계부채위기 속에서도 내수부양을 위한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계속되었고, 소위 싸게 돈을 빌려주는 각종 대출 복지(?) 제도가 선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 현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400조 가량 증가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는 전 세계 선진국 국가들에서 민간부채가 축소 국면에 들어갔었던 것과 대비된다. 결국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정부도 지난 여름 가계부채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애써 살려놓은 부동산 시장의 불씨를 꺼트릴 수 있고 이것이 내수침체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 혼돈스러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부채가 많아도 걱정, 줄어도 걱정인 세상. 모두가 부채증가를 염려하는데, 왜 가계부채는 계속 늘어만 갈까? 이제 이것을 개인들의 욕망이나 재무관리의 미성숙 등으로 치부할 순 없다. 왜 우리사회가 빚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짚어봐야 할 것이다. 그 속에서 문제해결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1. 97년 외환위기 이후 벌어진 자금수요의 거대한 전환

먼저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되는 화폐는 신용화폐로서 은행의 대출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우리사회에서 돈을 만들어내는 기관은 은행 밖에 없다. 그런데 은행은 아주 특별한 규칙에 의해서만 돈을 만들어낸다. 바로 누군가의 부채를 통해서만 돈을 만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누군가 부채를 일으켜 자금을 조달해야 돈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사회전체로 흘러 우리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것이다. 보통 경제교과서에서는 기업이 은행에서 사업자금을 대출받아 이것을 생산활동에 투자하면서 돈은 사회로 흐르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부채증가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만큼 생산활동에 필요한 자금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게 부채를 통해 조달된 자금으로 인해 더 왕성한 생산과 더 많은 분배가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거시경제의 주요 주체별 부채비율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들여다보는 것은, 이 시대에 부채와 돈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다음 그림은 한국경제 지난 십여 년 동안의 부채비율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자료: 한국은행
보다시피 기업의 GDP대비 부채비율은 2009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고, 그리고 가계와 정부의 부채비율은 십년동안 지속적으로 계속 증가했다.(덧붙이면 현재 가처분소득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50% 가까이 늘어난 상태이다.) 이것은 한국경제에서 자금수요의 비중이 기업에서 가계와 정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금수요의 반전된 경향의 시작점은 97년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 그림은 총자산대비 부채비율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부채비중을 줄이고 자산을 늘리는데 주력했다. 97년 외환위기로 심대한 타격을 입었던 기업들은 재무건전성의 새로운 지표로 ‘BIS 자기자본비율(총부채/위험가중자산)과 부채비율 200%’라는 금융적 척도가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금융 건전성이 구조조정의 핵심사안으로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산업발전의 논리나 고용과 임금은 ‘부채비율의 감소’를 위해 부차화 되었다. 그리고 기업들은 신기술에 투자한다거나 산업을 확장하기 보다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기업건전성 향상에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시 기업들은 신규사업에 대한 투자도, 고용창출도 없이 현금을 확보하느라 혈안이 되었다. 또한 은행은 더 이상 기업에 돈을 빌려주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계도 줄어든 수입과 미래의 불안이 엄습해오면서 최대한 지출을 자제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반면 가계는 자산에 비해 부채가 급격히 늘어났다.


자료: 이병기(2008),<외환위기 전후 기업의 구조조정과 성과변화 분석>,한국경제연구연보고서/조현수(2002),<버블붕괴현상의 위험성에 따른 한국경제의 위기>,Pyeongteak Review Vol 16./OECD Statistics/재인용: http://chshin.com/blog2/index.php/archives/707



1-2. DJ정부의 내수진작 종합대책

이런 급격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건 정책개입에 따라 경제구조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은 경제위기로 인해 기업이 채무축소과정에 몰두하면서 투자와 고용이 급격히 줄어드는 국면이었다. 이에 정부는 내수를 부양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방법은 정부투자를 늘리거나 민간소비를 늘리는 것 뿐 이었다. 정부는 부실은행 정리를 위해 160조가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98년에 한 해 벤쳐육성을 위해 1.2조원(집권 5년 동안 투여한 정책자금지원, 보증지원 총 11조원)을 투여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민간소비를 증가시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가계는 경제위기 국면에서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추가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이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98년 9월의 ‘내수진작 종합대책’ 이다. 이것의 주요 내용은 소비자금융을 확대해 돈을 풀어 소비를 부추김으로써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것이었다. 그 방안으로 신용카드의 수수료 인하와 인출한도 확대, 주택이나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이용되는 할부금융의 금리인하, 주택자금대출 확대 등이었다.

이것은 부의 재분배와 고용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회보장 정책이 아니었다. 개인에게 신용카드를 쥐어주고,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며 경기부양의 책임을 가계에 전가하는 방법이었다. 고용불안은 날로 심각해지고 사회안전망은 취약한 상황에서 내수진작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소비자 중심의 신용카드 확대 정책’은 신용불량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부가 진행한 신용카드 활성화대책으로 카드의 발급과 사용 제한 규제가 대폭적으로 풀렸다. 그 중 핵심인 ‘현금서비스한도 폐지 조치’였다. 정부의 규제완화로 인해 신용카드시장으로 재벌들이 몰려들었고 신용카드 발급은 과열경쟁으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그 결과는 2003년 카드 대란으로 귀결되었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카드 수 1999년 1.8장 => 2002년 4.6장/ 신용카드 전체 발급 수 1999년 38,993장 => 2002년 104,807장/ 신용카드 사용액 1999년 90조 7천억원 => 2002년 622조 9천억원.


1-3. ‘채무자’에서 ‘투자자’로 새롭게 호명된 경제주체, 그리고 “빚 권하는 사회”

그런데 이런 부양책은 단기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후 한국경제의 양상을 바꾸는 계기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가계가 저축을 하여 자금을 공급하고, 기업이 그 돈을 조달해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전통적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이젠 가계와 기업 가릴 것이 모두 투자자가 되었고, 투자를 위한 자금조달자가 되었다. 오히려 기업은 재무구조의 건전성에 집착하면서 저축을 더욱 늘렸다.

그러는 가운데 은행은 기업 대출사업을 대체할 새로운 출구로서 ‘개인’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정부는 저금리정책을 취했고, 이것은 이후 노무현정부에서도 계속 유지됐다. 당시 저금리정책으로의 전환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 2000년 들어 주식시장의 IT버블이 꺼지면서 경기가 급랭하자 새로운 부양책이 필요했었다. 더군다나 2001년 911 테러까지 터진 상태에서, 특단의 부양책을 취하는데 “빚의 평등화”라고 일컬어지는 소비자금융의 대대적인 확대였다. 이에 발맞춰 미국 중앙은행은 1%대 초저금리 정책을 취했다. 그리고 그 결과, 모두가 알다시피 극심한 부동산  거품을 불러들었고, 이에 연동된 각종 파생금융상품들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이 되는 배경을 만들게 된다. 
 오히려 당시 노무현 정권은 ‘동북아 금융허브론’에서 보듯, 외환위기 이후 벌어진 한국경제의 변화를 좀 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다듬고자 자본시장 선진화로 밀고나가려고 했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부채-자산 경제의 등장은 한국만의 경향이 아니었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에서는 8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한국은 97년 IMF 구제금융 당시 요구조건을 수용하는 계기를 통해 뒤늦게 이식되었다.
 

저금리정책과 소비자금융 확대는 우리사회가 “빚 권하는 사회”로 변하는 정책적 계기였고, 세계적인 부동산 거품과 맞물려 우리사회는 다시 한 번 부동산투기 열풍에 휩싸이게 된다. 그 부동산투기 열풍의 대부분은 가구당 수억대 빚을 지면서 쌓아올린 빚더미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심지어 재테크를 넘어서 “빚테크”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당시 경제일간지 제목을 봐도 우리 사회가 빚을 지는 것과 투자를 동일시하게 되었다는 드러내준다. 

    “빚 잘 굴리는 당신 부자되겠네요”    -한국경제 2006년 11월 5일

이런 사회적 변화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2004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투기열풍은 부동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투자자로서 새로운 사회적 규정은  각종 금융자산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고, 누구나 펀드계좌 하나쯤을 가지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펀드 계좌 수는 2003년 말 361만 개에서 2006년 1월 1천만 개를 넘었고,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가 발발한 2007년 10월에 2천만 개를 돌파했으며,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인 2008년 6월에는 2천500만 개로 최고점에 이르렀다.


 빚더미 서민도 2억 주택 구매 가능? ... 똑똑한 ‘빚테크’ 노하우   - SBS 2011년 10월 11일

불타는 증시…"빚내서라도 올라 탈래", 코스피 2200 넘나들자 "빚테크" 늘어 - 조선경제 2011월 5월 2일-

이처럼 “빚 권하는 사회”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 어느 정부를 가릴 것 없이 진행되었었다. 이것은 지난 17년간의 내수부양의 버팀목이 바로 ‘가계부채’였다는 점을 가리킨다. 자금조달로 인해 부채가 늘어나도 자산가격만 상승할 수 있다면 부채증가는 문제될 게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조달능력을 ‘빚테크’라 칭송했다. 마치 개인도 이젠 기업처럼 자금을 조달해 투자를 하고 수익을 내는 주체로 변모한 것이다. 채무자인 동시에 투자자가 된 것이다. 이제 가계뿐 아니라 더 나아가 개개인 하나하나까지 자신의 생활양식에서 투자자로서의 역할과 규율을 체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은 채무자인 동시에 투자자가 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자신의 모자람을 느낄 때마다 자기 계발과 자기 경영에 몰두하게 되어 “자신의 일을 관리하고 자신의 미래를 돌보는 이상적 존재 모형”(주체화)이 되는 셈이다. 이런 개인과 가계의 금융적 포섭은 자본관계의 확장으로서 착취와 수탈의 강화이지만, 행복과 성공, 안전과 개인의 책임 등 다양한 윤리적 가치를 동원해 개인들을 주체화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권력관계의 헤게모니를 강화시킨다. 그 결과 오늘날 자본-노동관계는 더 이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삶의 중심에 놓이지 않으며, 금융시장에서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금융투자자들과 개별화된 계약관계로서 채권자-채무자 관계가 사회적 삶 전반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는 금융화가 추상적인 자본의 동학과 담론적 실천, 계급지배와 개인화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금융화는 단지 당대의 현실을 묘사하는 술어적 규정이 아니라, 자본이 작동하는 지배적인 방식이자 자본주의적 권력관계에 따라 현실을 재현하고 주조하는 권력의 기술이다. 라자라토의 표현을 빌면 “금융은 자본의 정치학”이다.- 최철웅,<금융화, 자본운동의 변화와 계급통치전략>, 2016.3.16 참세상주례토론회


이러한 ‘일상생활의 금융화’는 대중들이 소비자신용을 통해 자본시장의 동학에 깊이 연루되었다는 경제적 현실만을 지시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훨씬 더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변형을 함축하고 있다. 한때 ‘투기’나 ‘빚’ 등 도덕적 어휘와 결부되어 비합리적이고 탐욕스런 행위로 간주되던 개인들의 금융적 실천은 이제 “새로운 삶의 방식이자 자아 획득의 수단”이 되었다. ‘재테크’에 이어 등장한 ‘빚테크’라는 용어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금융적 실천은 더 이상 요행을 바라는 탐욕이 아니라 복잡한 수학적 계산과 재무적 책임성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합리적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새로운 ‘금융적 합리성’에 따르면 오늘날 부자가 되기 위해선 안정적인 직장과 습관적인 저축행위가 아니라 과학적인 금융지식의 숙달과 체계적 실천(재테크)이 필수적이다. 개인투자자를 위한 각종 금융 지침서들, 금융 섹션을 담은 신문과 24시간 금융뉴스를 전달하는 케이블TV, 금융정보를 교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들,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금융교육 프로그램에 이르는 미디어와 담론들의 범람은 이러한 메시지가 이미 한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개인의 금융투자와 대출기회 확대는 단지 합리적인 이익추구 행위라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금융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도 정치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최첨단 금융공학으로 무장한 금융시장은 순수한 시장의 전형으로 여겨졌고, 자유 시장의 옹호자들은 금융이 기업만이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해왔다. 금융민주화론에 따르면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은 제1금융권으로부터 급전을 빌리지 못해 고금리의 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불법추심의 위험에 노출되곤 한다. 따라서 신용등급이 낮은 ‘금융 소외자’에게까지 금융의 문턱을 낮추고 그들에게 자산축적의 기회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외환위기 이전까지 개인에게는 저축이 강조되고 대출은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기에, 개인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일종의 특혜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서민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야말로 금융권이 해야 할 사회적 책무인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었다.- 최철웅, <금융화, 자본운동의 변화와 계급통치전략>, 2016.3.16 참세상주례토론회


1-4. ‘투자자’에서 ‘푸어족’으로, 재생산의 위기

그러나 이런 변화가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오진 않았다. 한국도 미국처럼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빚테크의 환상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편에선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설적으로 ‘금융의 민주화’ 담론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은 자본주의의 파국을 예고하는 듯했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와 환상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발발한 금융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자본축적 모델로 간주되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모델은 경제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 공공부채와 가계부채의 증대, 소득의 양극화 심화, 실업률의 증대, 사회통합 저해 등 만만치 않은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각국이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재산권 보장과 금융시장의 안정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이념은 여전히 지배적인 공공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금융위기의 책임은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도덕적 타락과 탐욕, 금융 감독기관의 감독부실과 탈규제화, 신종 파생상품의 위험성 등 금융 외적인 요인들로 돌려졌다. 금융시장은 본래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나 정부의 개입으로 원만한 작동이 교란되었거나, 투자자들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요인이 금융시장의 과도한 거품과 폭락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즉, 자본의 내재적 동학이 아닌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데올로기가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셈이다. 그리하여 금융을 민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더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믿음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최철웅,<금융화, 자본운동의 변화와 계급통치전략>, 2016.3.16 참세상주례토론회 
 그리고 투자에 실패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우스푸어’가 바로 이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그리고 ‘하우스푸어’ 문제는 ‘역전세’, ‘깡통주택’ 집값이 은행대출과 같아져 버린 상태, 집을 경매로 팔고 난 후 은행대출을 갚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 ‘깡통전세’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그 불똥은 전세금을 날린 위기에 처한 세입자에게까지 번지게 되었다. 실제 배당순위에 밀려 전세금 1억 3000만원을 모두 날린 사연 등이 뉴스에 종종 소개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까지 벌어지자 MB정부는 부동산 부양정책으로 모든 내수부양책들을 맞추게 된다. 여기에 세금감면은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대책들이었다. 그리고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2014년 급기야 부동산 대출을 늘리기 위해 금융규제를 완화시켰고, 전세대책은 집을 싸게 구매하는 것으로 변질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인 초저금리 정책 환경에 따라 한국은행도 1.75%까지 금리를 낮춤으로서 정책보조를 같이 하게 된다.

이처럼 주택담보대출 금리인하정책과 MBS시장 활성화 정책에 따라 전세수요자들을 주택매매시장으로 인입시킬 수 있는 금융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여기에 저금리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전세공급량이 부족해지면서, 전세수요자들이 전세대출을 늘리거나 주택매매를 선택함으로써 가계대출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계부채 증가는 다시 내수부양의 효과로 주택시장을 자극시켰고, 2015년 올해 90년 이후 가장 많은 70만호에 이르는 주택분양 물량을 쏟아냈다. 결국 다시 한 번 가계가 내수부양의 버팀목으로 동원된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는 주택이라는 물질적 자산이 존재한다. 하지만 주택은 자신이 거주하는 한, 임대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자산이 아니라 감가상각이 이뤄져 소비되는 재화다. 그래서 부채 상환을 위해선 다른 소득원이 계속 필요하다. 주거안정과 억대 빚을 비교했을 때,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는 안정적인 대출상환의 여건들(일자리와 소득)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한편, 내수부양의 버팀목이 되는 가계는 주택에만 등장하지 않다. 사실 문제는 더 심각한 부채위기를 겪고 있는 ‘자영업푸어’에 있다. 2008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지자 자영업자와 저소득층 중심으로 부채의 위험이 높아졌었다. 부채양상도 주택구매 뿐만 아니라 생활자금과 생계형 사업자금으로도 확대되었다. 그리고 자금조달 기관도 금리부담이 높은 제2금융권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생계형 ‘자영업푸어’가 양산되는 건, 그동안 투자자로 호명되었던 가계가 점차 한계기업처럼 되고 있는 걸 보여준다. 결국 가계가 낮은 생산성 속에서 기업의 투자공백을 근근이 빚으로 메우는 것이다. 가장 많이 종사하는 업종은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으로서 전체의 30.9%에 달한다. 사업ㆍ개인ㆍ공공서비스(24.3%), 농립어업(18.6%). 자영업자들의 연간 평균소득은 2012년 기준 3,472만원으로 임금근로자의 평균소득(3,563만원)보다 적다. 남성의 연간소득(3,981만원)이 여성(2,313만원)보다 약 1.7배 높고, 연령별로는 40~49세가 4,159만원으로 60세 이상의 평균소득(2,032만원)보다 2배 정도 많고, 30세 미만은 1,773만원으로 전체 평균(2,897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대출규모는 임금근로자보다 월등히 높다. 자영업자 차주 1인당 대출규모는 1억1,700만원. 이는 임금근로자 1인당 대출규모인 3,800만원의 세 배에 달하는 수준. - 통계청, KB금융지주연구소
 

그러나 ‘자영업푸어’ 대부분은 퇴직, 실직 등으로 인해 노동시장에 탈락한 비자발적 자영업자들이다. 그래서 ‘자영업푸어’의 문제는 노동시장 문제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현재 자영업자들의 경우, 과당 과밀경쟁으로 인해 수입은 떨어지는데, 임대료 등의 고정비용은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년을 못 넘기는 자영업자가 70%에 이르는 형국이다.

이렇게 내수부양을 위해 희생된 이들은 대출상환을 위한 소득부족과 고정경비 지출확대를 감당하기 못해 재생산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것은 주택담보대출 용도가 주택구입이 아닌 대출 상환과 생계자금 마련에 사용된다는 조사결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의 가계자산의 80%가 실물, 즉 주택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다른 소득재원이 없는 한 주택담보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1가구 1주택인 경우 집을 팔아서 빚을 갚을 선택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선택을 하기 위해선 다시 주거비용 마련을 위해 빚을 내야만 한다. 이런 한국의 자산분포현황은 다른 선진국들과 매우 다른 것으로서, 이들에 비해 한국의 가계부채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리하면, 우리가 직면한 가계부채 위기는 한계 상황에 다다른 신자유주의적 부채-자산 경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위기에서 위기대응의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다. 담보자산의 유무, 자산가격의 수준에 따라 가계가 처한 재생산 위기는 시간차를 두고 확대되고 있다. 왜냐하면 자산효과(wealth effect)에 기댄 재생산구조는 자산가격의 변동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계실질소득이 꾸준히 감소하면서 가계는 새로운 소득원을 찾기 위한 투자자가 되길 요구받고 있다. 이런 결과 기업의 투자회피와 부채축소로 인해 생긴 내수부양의 빈자리를 가계가 낮은 생산성과 고비용구조 속에서 십여 년 째 이를 메우고 있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다.

2. 약탈적 대출과 빈곤비니지스 - 빚으로 빈곤을 해결하라? 

2-1. 빈곤계층에 대한 약탈적 대출과  빈곤비즈니스

한편 이렇게 자산투자에 실패한 ‘푸어족’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이 부동산담보대출이고 세대별로는 50대, 중산층이 많은 부채를 가지고 있지만, 10%의 빈곤계층의 가계부채는 실제 그들의 생존이 빚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전체 1,788만 가구 중 412만 가구가 저소득층이고, 412만 가구중 156만 가구가 금융대출이 있는 상황이다. 통계청,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이중의 절반은 연체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저소득층의 대출 잔액에 연 가처분소득의 8배 이상 통계청,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인 상황이다.

이러한 빈곤계층의 가계부채문제의 시작은 97년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량의 실직과 비정규직의 증가는 이른바 ‘노동하는 빈곤층’(working-poor)을 대대적으로 양산했다. 물론 워킹푸어의 등장이 곧바로 가계부채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개인의 신용에 맞춰지면서, 빚으로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 바처럼 이미 2003년 카드대란 당시, 신용불량자가 400만 명에 육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신용불량자들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보면 현물구매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현금서비스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은 생계를 위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사용이 주를 이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빈곤한 서민들은 불안정한 노동으로 인한 임금하락을 현금서비스로 보충하며 경제위기를 견디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 ‘푸어족’이라는 말은 신조어를 만드는 제조기가 되었다. 학자금대출로 고통 받는 ‘에듀푸어’, 결혼을 빚을 시작하는 ‘웨딩푸어’, 수년간 벌어진 전세급등으로 인해 전세대출을 상시적으로 끼고 살 수 밖에 없는 ‘전세푸어’ 까지 등장했다. 가히 ‘푸어족’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이젠 삶의 모든 영역이 빚으로 메워야 재생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우리사회에 ‘약탈적 대출’이라는 사회악을 만들었다. 영화 ‘화차’와 드라마 ‘쩐의 전쟁’ 등이 대중적 관심을 받은 것도 이런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각종 대부업체와 카드사, 저축은행 등을 통해 이뤄지는 약탈적 대출은 워킹푸어를 계속 빈곤에 머무르게 만든다. 여기서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어느 정도인지는 하루에 수 십 번씩 도배되는 이들의 TV 광고를 보면 가늠할 수 있다. 이들은 금융시장에서 저금리로 싸게 자금을 조달하여, 대출시장에서 20-30%에 이르는 고금리 대출사업을 벌인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몇몇 대표적인 카드사, 캐피탈, 저축은행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주주배당지급액이 5조원에 이른다. 제1금융권까지 포함하면 배당지급액은 20조원에 이른다.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기업은행, 하나은행, 외환은행/ 솔로몬, 한국, 진흥, 제일 저축은행/ 신한카드(LG카드포함), 삼성카드, 현대카드, 롯데카드/ 현대캐피탈, 신한캐피탈, 롯데캐피탈, 아주캐피탈)
 


이러한 약탈적 대출의 경향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가계부채를 염려하면서도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에서, 가계부채를 관리한다는 것은 개인들의 능력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사회적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들에게 취해야할 사회보장사업은 저소득층 대출프로그램으로만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이러다 보니 채무자들도 싸게 돈을 빌리는 것이 일종에 복지라는 인식까지 갖게 되었다. ‘국민행복기금’이나 ‘햇살론’ 등의 형태로 일종의 빈곤비즈니스를 형성하고 있다. 빈곤비즈니스란 일본에서 시작된 것으로 빈곤층을 주 대상으로 하는 산업을 말한다. 다시 말해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닌, 빈곤을 고정화하는 비즈니스” <홈리스뉴스 12호> “요세바 통신-빈곤 비즈니스란 무엇인가?” 2012.04.30.
를 말한다.

이렇게 십여 년 간 이어진 약탈적 대출과 빈곤비즈니스는 우리 사회에서 내수경제를 한 쪽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이 빌린 대출금의 대부분은 생계를 위한 소비로서 내수 경제에 흘러 다니고 있고, 대출상환을 위해 이들 대부분이 하루도 쉼 없이 벌이고 있는 노동은 우리 사회에서 저임금 서비스업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2-2. 재생산의 위기 - 청년부채, 노년부채

그런데 이러한 약탈적 대출과 빈곤비즈니스의 심각한 문제는 장기적으로 개인의 생산동력을 갉아먹는다는데 있다. 아무리 노력해서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누구든 건실한 삶을 포기하려 들 것이다. 최근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는 것은 이런 삶의 전망을 포기하는 것이 일부 열악한 계층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적인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자신과 타인의 노동에 대한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진지한 성찰과 노력을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하도록 만드는 상태에서는 사회재생산 구조가 하나 둘씩 무너질 수밖에 없다. 최근 세계적으로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소득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과 정치지도자들이 그 위험성을 지목하는 이유는, 이것이 계층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회재생산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몇몇 선진국들의 경우 청년세대의 좌절이 IS에 동조하는 극단적 종교주의와 묻지마 총기난사와 같은 외톨이형 범죄 등으로 표출되고 있어 심각한
출처: 조선비즈 2015.07.16
 사회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도 청년세대의 좌절과 재생산 위기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청년부채”라는 말까지 등장하면서 부채위기 계층에 청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첨언하면, 청년창업을 장려하는 정부의 정책도 다른 한편에서 보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청년세대의 고통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용회복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신용회복위에서 채무 조정에 들어간 사람의 약 10%가 20대(약 4만230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채무 조정 신청자의 대부분은 대학생들 이었다. 이젠 빚 때문에 학교를 잠시 쉰다는 말이 별 이상하지 않은 얘기가 되어 버렸다. ‘대학생 대출’이라고 인터넷 검색만 해도 대출상담 사이트가 줄줄이 뜬다. 100만 원당 한 달에 2만~3만원 이자(월 금리 2~3%)정도인데, 연 금리로는 24~36%에 해당하는 고금리이다.

2014년 가계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로 시작된 청년부채는 부채의 절대적인 크기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지만 2013년 대비 30세 미만 청년이 11.2%로 가장 많이 늘어났고, 30~39세 청년들 또한 7% 늘어났다. 이는 청년의 삶이 대출을 늘리지 않고서는 점점 살아가기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청년들에게 가장 큰 빚 부담으로 작용하는 건 학자금대출뿐만 아니라 생계비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주거비용이 있다. 한국은행 가계금융복지 조사를 통해 살펴보면, 30세 미만의 주거비 부담이 평균 347만원으로 다른 계층 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거비의 특성상 줄일 수 없는 항목이다. 다른 항목은 다른 계층에 비해 낮은 소비지출을 보이고 있다. 


자료: 통계청 2014 가계금융복지조사,
출처: 머니투데이 2015.11.18
한편 청년보다 부채비율 높은 노인계층의 부채는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들은 이미 생애주기 동안 벌어들인 자산을 모두 소진한 상태라서 상환능력도 막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KDI "고령층 가계부채의 구조적 취약성"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층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 161%(전 연령층 128%)로서 60대 이상 고령층의 가계부채 구조가 주요국에 비해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60대 이상 가구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전 연령층 평균보다 높게 나타난 곳은 비교 가능한 주요국 중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외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고령층의 가계부채 상환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심각하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택이라는 자산이 있는 경우 주택연금과 같은 자산유동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겠지만, 특별한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노인빈곤층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은퇴 이후에도 소득보전을 위해 노동시장에 문을 두드리게 된다. 가구 소득 중 연금 및 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9%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반면 독일과 네덜란드의 관련 비율은 70%를 상회한다.) 노인빈곤률 50%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 힘든 압도적인 수치이다. OECD는 12월 1일 배포한 34개 회원국의 연금 제도 및 정책에 대한 보고서인 <2015년도 한 눈에 보는 연금>(Pension at a Glance 2015)>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50%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OECD 평균인 13%의 4배에 가까운 수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최근 세대간 불평등을 강조하는 담론들, 가령 노인층이 청년들의 소득창출을 막고 있다는 식의 선전은 우리사회의 모습을 왜곡시키고 있다. 부채위기를 비롯한 삶의 재생산 위기는 전체 모든 계층에게 드러나는 현상이며, 저소득층, 자영업자, 실직자 등에 더욱 가중되어 있다. 노년부채의 증가 원인도 자식교육비와 퇴직 및 실직 후 생계형 자영업에 뛰어들어 생겨난 부채가 상당수이다.



3. 가계부채 위기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모색

3-1. 대안적 사고를 위한 출발점 

가계부채의 심각성은 이미 수년 전부터 얘기되어 왔고, 이에 대한 대책들도 무수히 많이 나왔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내수부양의 빈자리를 가계가 낮은 생산성과 고비용 구조 속에서 계속 메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선 부채위기의 해결은 요원하다. 먼저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거시경제 항등식이라 불리는 국민총소득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Y(국민총소득) = C(소비) + I(투자) + G(정부지출) + (X-m)(순수출)


위 그림은 국민경제 3대 주체를 중심으로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순환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 순환이 순조롭게 움직이기 위해서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저축과 투자가 같다고 가정한다. 보통 가계가 저축한 돈을 기업이 빌려서 생산으로 투자한다고 보는 것이다. 은행은 이 자금을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기업경영의 일반형태는 차입경영이기에, 기업이 가장 큰 자금수요자임 셈이다. 그래서 GDP 대비 부채비율도 기업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발생하면 기업은 부도위기에 몰리기 때문에 차입경영을 축소하고 부채관리에 들어간다. 투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97년 외환위기 상황이 그러했다. 2008년 금융위기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여기서 보통 정부는 일시적인 경기부양책을 써서 불황국면을 반전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그 경기부양책으로 총지출이 다시 늘어나면, 그림에서 보듯 그 수혜의 대부분은 기업들이 먼저 가져간다. 문제는 기업이 그 이익을 다시 재분배하기 위해 즉각적인 투자로 전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경기전망이 비관적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부채 관리를 위한 현금 쌓기에 몰두한다. 신규투자는 물론이거니와 기존 설비의 가동률도 떨어뜨리고 인력도 감축한다. 그렇게 되면 수 년 동안 실물경기의 불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이 상황이 고착화되면 소위 장기불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흔히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불황’이라는 것이 이것을 말한다.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DJ정부도 ‘내수진작 종합대책’을 통해 기업투자의 공백을 메웠다. 그리고 원화가치 하락으로 회복된 수출경쟁력으로 IMF 구제금융 조기탈출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2000년대 미중간 ‘수출달러 환류메커니즘’에 따른 글로벌 경기성장세 덕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수익성이 회복된 기업들은 여전히 자본시장 개방에 의해 도입된 국제금융규율체제에 의해 부채관리에 몰두해야 했다, 그리하여 앞서 살펴봤던 저축률의 변화에서 보듯, 기업과 가계의 자금순환구조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기업의 저축률이 가계의 저축률보다 높아졌다.

그런데 이런 가계부채에 근거한 내수부양책이 지속되기 위해선 가계자산의 증가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2004 년부터 불기 시작한 부동산 광풍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더군다나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위축된 내수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선 다시 부동산 경기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경제에서 내수비중이 가장 큰 것이 바로 건설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혁신도시 건설사업이나 행정수도건설은 다른 한편에서 보면 내수부양을 위한 커다란 줄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제 기업에서 가계로 자금순환의 손바뀜이 일어 난지 어언 18년이 가까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손바뀜으로 내수부양의 버팀목이 되어 왔던 가계는 이제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제 누가 바통을 이어받아야 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에서부터 사내유보금 환수를 위한 ‘부자증세’까지,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정치지도자들은 문제해결의 초점을 기업에 맞추고 있다. 수출대기업 중심으로 구축된 한국경제의 구조상 이들로부터 재분배가 시작될 수 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일면 타당한 분석이다. 그래서 역대 어느 정권도 기업들을 향해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구애를 멈춘 적이 없었다. 기업총수의 특별사면도 언제나 그들에게 경제활성화를 위한 투자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국민경제를 위해 내놓은 게 얼마나 될까? 97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고착화된 이후, 기업의 일반적인 투자행태는 유보이윤 이상을 투자하지 않게 되었다. 기업부채의 대부분도 기업의 자산가치 증대를 위한 금융자산형태로만 운영되고 있다. 통계상 전체적으로 볼 때 그러한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양극화 된 한국경제 특성상, 이런 경향은 부채관리가 안정적이고 이윤이 많은 대기업에서 두드러진다.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운영자금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첨언하면 97년 이후 ‘이윤대비 순투자비율’은 뚝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세금, 이자, 배당을 지불하고 난 유보이윤 수준으로 투자규모가 줄어들게 된다. 보통 기업들이 대출을 통해 신규투자를 늘리는 경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97년 이후 신자유주의적 기업지배질서 속에서 기업은 유보이윤 이상을 투자하지 않는 주체로 바뀌었다. 97년 이후 기업의 축적률(자본스톡 대비 순투자)는 유보이윤율(자본스톡 대비 지불 후 이윤)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으며, ROE(자기 자본 이익률) 보다 높은 수준이다. 여기서 ROE는 자본스톡 및 재고, 그리고 인플레이션을 보정한 마이너스 순부채를 고려한 것이다. 한국의 비금융법인의 순부채는 줄곧 증가하였지만, 인플레이션을 보정했을 때 2000년대 이전 ROE와 유보이윤율은 대체로 일치한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인플레이션 효과 및 구조조정을 원인으로 ROE와 유보이윤율은 분기한다. ROE을 기준으로 할 때, 비금융법인 축적률은 ROE보다 높다. -김먹민,<신자유주의 위기와 세계경제>,참세상 주례토론회 2015.10.26
 그리고 사내유보금 중 200조에 가까운 현금성 자산 중에서 80%가 삼성, 현대를 비롯한 5대 재벌에게 몰려있다.

다시 앞의 거시경제 순환그림으로 되돌아 가보자. 기업과 가계 모두 현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면, 우리는 정부라는 주체에 대해서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대선 무렵부터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담론 등이 대중적으로 주목 받았던 이유는 대중들이 더 이상 개인화된 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하는데 한계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라는 아젠더를 선점했던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공약을 뒤집고 경제민주화를 경제활성화와 부당대립시키고 있다. 여전히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으로 도모하고자 하는 과거의 오래된 인식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그리고 정부는 균형재정론에 기반한 최소한의 위기관리정책 만을 다룰 뿐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도 자인하는 바처럼 복지재정으로 들어가는 재정은 꾸준히 늘고 있다. 자연증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른 이유를 갖다 붙여도 한들, 실재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출과 가계부채 만이 유일한 경기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국가와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 ‘효율성’에만 집착했던 사고를 크게 전환시킬 시점에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효율적인 재정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생산의 토대마저 침식시키는 사회재생산의 위기 앞에서 효율성에만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릇이 계속 깨져나가면서 작아지고 있는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의 가계부채 위기를 개인의 재무관리의 실패로 봐야할지, 신용위기의 잠재적 위험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침식되는 사회재생산의 위기로 봐야할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 가에 그 풍경이 달라진다. 우리는 가계부채 위기를 사회재생산의 위기로 보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젠 국가의 역할과 재정정책에 대해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직접 사회적 효용을 식별하고 공공투자를 이끄는 방식으로 부채문제에 대해 개입해야 한다. 국가는 더 이상 시장을 관리하는 주체가 아니라 생산과 분배를 책임지는 주체로서 본연의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재정에 대한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한다. 가령 복지재정을 논할 때 마다 등장하는 “재원은 어디서?” 라는 말은 국가는 기본적으로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에 돈이 없는 걸까? 국부펀드 규모만 100조이고,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만 해도 400조 이다. 설령 이 돈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고정된 돈이라면, 공공부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 된다. 국민연금 500조가 쌓여 있는데 이 돈을 국가가 30년 장기국채로 조달하는 건 어떨까? 주식시장의 출렁임에 따라 수조원의 손실을 보고 있는 이 기금을 국가재정으로 안전하게 투자하는 게 더 낳지 않을까? 이미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채가 100조 가량 된다. 국민연금의 성격이 노후보장기금이라면, 이것을 국가재정에 투자하여 더 나은 재생산체제를 사회적으로 건설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투자일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 했던 방식이다. 국내 연기금들이 일본국채의 주요한 매수자였고, 이 자금순환을 통해 일본은 20년 넘게 버텨왔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돈의 조달이 아니다. 조달된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4대강 사업처럼 토건재벌들한테 몰아주거나 사회적 효용은 불확실한 채 운영비용만 늘리고 있는 애물단지를 만들어선 곤란하다. 각종 국제행사를 치르기 위해 지었던 경기장, 박람회장, 전시물 등이 일회성 행사가 끝나고 지자체 재정을 좀먹는 블랙홀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목격하고 있다.
 실제 국가는 거둬들인 세금만으로 재정을 지출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에 의해 보증되는 화폐는 미래에 창출할 부가가치를 담보로 만든다. 그러므로 국가의 권능에 의해 발권되는 화폐가 국가수중에 없다는 건 아무리 봐도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화폐체계의 토대를 지탱하는 국가가 재생산의 위기국면에서 자금수요의 주체이자 생산의 주체로 나서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참조: 현대자본주의 조세기반 화폐체제>


3-2. 국민행복기금 운영방식의 전면적인 개편

이러한 국가재정에 대한 인식의 전환 속에, 작금의 가계부채 위기 해법들을 모색해 보자. 이미 우리 주변에 수많은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상환연장, 저금리 갈아타기, 담보비율 조정,  햇살론과 같은 대출복지서비스, 채무조정 프로그램들이다. 통합도산법과 같은 개인파산과 면책을 돕는 제도적 장치도 있다. 지난 대선 공약 중에서 가계부채 대책으로 제시된 여러 공약 중, 별제권 문제가 쟁점이 되어었다. 별제권은  담보채권자가 다른 채권자보다 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다. 주택담보대출을 해준 은행에 유리한 제도인데, 이로 인해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쪽은 1가구 1주택자가 개인회생을 신청할 경우 별제권 적용을 배제해 주택을 그대로 보유하면서 회생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빚 때문에 삶의 기본공간인 주택마저 상실해 주거가 급격히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었다. 당시 통합도산법에서는 개인의 파산 신청 이후 선고 직전까지 채권자가 채무자 재산에 대한 담보권을 별제권으로 인정했다. 이 때문에 주택에 대한 강제집행을 할 수 있어 회생을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었다.
 기업의 경우도 비슷하다. 최근 정부는 기업구조조정 촉진법과 같은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상시화하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겉으론 비슷해 보여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관리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과 규모에 있어서 그 차이가 매우 크다. 모두 국가의 신용보증과 공적기관들의 기금을 담보로 하고 있지만, 가계부채는 문제해결의 초점을 여전히 개인책임에 의존한다. ‘도덕적 해이’ 방지가 주된 운영기조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기업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정부가 보증하는 공공기관이 직접 부실채권을 인수하여 기업회생을 돕기도 한다. 그리고 그 규모도 결코 작지 않다. 16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들어갔던 97년 외환위기 사태를 제외하고서도, 수많은 사례에서 정부의 직간접적인 부채위기 개입 사례를 엿볼 수 있다. 지난 10월에 대우조선해양 부실사태가 불거지자 산업은행을 통해 4조원 규모의 자금지원이 이뤄졌다. 2003년 STX 부실사태 당시에도 STX 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 2016년까지 2조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기업에 돈을 빌려준 채권단 대부분은 정부의 금융 감독체계에 있는 은행들이다. 산업은행이나 정책금융공사처럼 정부에 의해 직접적으로 관리되는 금융기관도 있다. 이러한 신용체계들을 바탕으로 상황이 급박할 시 유사공적자금의 형태로도 많은 지원이 이뤄진다.

출처: 경제개혁연대(2009.3.25.)<경제개혁연대, 정부의 금융위기 관련 지원대책 자금규모 총액 조사 결과 발표>


이뿐만 아니다. 작년엔 한국은행이 주택금융공사에서 발행하는 주택저당증권(MBS)를 채권매입대상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것은 안심전환 대출과 같은 주택대출 프로그램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90조에 이르는 MBS 시장 활성화 정책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은 한국은행이 주택금융공사에 4000억 원을 추가 출자해서
출처: 한국경제 2014.03.07
 주택금융공사가 MBS를 발행할 여력을 만들고, 추가 발행된 MBS를 한국은행이 공개시장조작으로 매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은행은 발권력을 바탕으로 주택금융공사에 정책금융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한국은행의 가계부채 대책구조’라 부르기도 했다. 또한 한국은행은 중소기업에 자금을 직접 공급하기도 한다. 20조원 규모의 ‘금융중개 지원대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은,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 15조→20조원 확대, 연합뉴스,.2015.03.26
 

이런 점들에 비춰보면, 저신용자들의 신용회복을 위해 설립된 국민행복기금이라는 것도 가계부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금융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선 기업들에 대한 지원 사례와 비교할 때, 그 규모도 매우 초라하고 운영방식도 저신용자들의 재생산위기를 지원하기 보다는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더구나 국민행복기금이 이들 채권을 원금의 3%~5%에 사온 뒤 채무자로부터 원금의 50%를 받아내는 방법을 취하고 있어서, 과연 채무자의 삶의 회복을 돕기 위한 기관인가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20년 전 보증인들에게 까지 채권추심을 일삼아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국민‘불행’기금 된 국민행복기금, 경향신문 .2015.10.04
  

이제 이렇게 설립목적과 괴리되어 운영되는 국민행복기금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먼저 기금 규모가 너무 작다. 부실기업 채권을 매입하고, MBS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중소기업들을 지원했던 수준정도의 절반만이라도 투여해보자. 앞서 기업들에게 해줬던 사례들처럼 한국은행의 발권력으로 충분한 정책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매입할 수 있는 자산은 국채, 정부보증채, MBS가 있다. 때문에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기금을 확충하고 다시 한국은행이 이 국채를 매입하면 된다.  일종의 ‘한국판 양적완화’라 할 수 있다.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미 지난 여름 대외경제연구원장을 통해 이슈화된 바 있다. “내수 진작 위해 ‘양적완화’ 필요”, 이일형 대외경제연구원장 주장 “기준금리 조정 정책으론 한계 중소기업·가계 빚 탕감해줘서 국내 소비와 투자 자극하자” ‘국채 발행 뒤 한은이 매입’ 제안. 이 원장은 매입 대상 채권으로 중소기업 대출(10조1000억원)과 은행권 가계대출(3조1000억원), 제2금융권 부실 채권(14조1000억원), 햇살론 등 서민대출채권(12조4000억원)과 현재는 정상 채권이나 부실 채권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큰 채권(19조3000억원) 등 모두 60조5000억원 규모를 거론했다. 이 원장은 “한은이 직접 부실 채권을 사들여도 되지만, 정부가 부실 채권 매입을 위한 자금 조달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고, 한은이 이 국채를 매입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 한겨레 2015.07.08.
한편 일부에선 이런 방법에 대해  통화량 증가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을 지적할 수도 있으나, 그건 기우라 할 수 있다. 현재 3년물 금채금리는 1.7%정도 수준으로 매우 낮다. 이는 시중유동성이 매우 풍부하다는 걸 방증한다. 그리고 현재 한국은행은 160조원에 이르는 통화안정채권을 운영 중에 있다. 통화량 조절을 위해 이 방법으로 활용하면 된다.

 

이 돈으로 액면가보다 훨씬 낮게 매입한 기존 부실대출채권을 모두 소각시키고, 경우에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채무관계를 재조정해야 한다. 가령 공공근로사업과 연계하여 임금의 일부를 조정된 채무를 갚는 방식도 있다. 일을 해야 빚을 갚을 소득이 생겨나므로, 가계부채의 궁극적인 대응책은 고용정책과 함께 맞물릴 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공사업은 매우 많다. 허드레 일만 맡기는 형식적인 공공근로사업이 아닌, 중장기적인 고용형태로 사회적 효용을 창출할 공공근로사업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3-3. 재생산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정책의 전환 - 국가주도 복지체계 및 고용체계 구축

대공황 이후 현대자본주의 국가의 역할은 화폐관리와 더불어 노동력 관리를 부여받게 되었다. 장기실업 사태를 해결하고 생산기반을 복원시키기 위해서 국가재정을 투여하여 공공사업을 늘렸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국가복지체계를 설계하여 사회재생산을 복원시키기 위한 토대를 만들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비춰보면, 현재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가계 부채위기는 한편에서는 소득부족의 원인도 있지만, 열악한 복지체계 속에서 가계가 감당해야할 영역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계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략은 자산형성을 통해 낮은 복지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 국가는 가계의 자산형성을 돕는 세금정책과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내수정책을 취함으로서 이에 일조했다. 그러나 이제 그 자산형성 지원정책이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 왜냐하면 부동산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가계들은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자산가격을 구매하기 위해선 높은 부채를 질 수 밖에 없고, 높은 부채를 통해 자산을 구매한 가계는 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담보가치 하락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인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MB 정부 뿐 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취했던 방식은 연착륙이라는 명분으로 자산가격을 유지하는 정책이었다. 
 현재 우리가 주목하는 한계채무자들의 부채위기는 소득으로 감당하기 힘든 고부채의 문제 뿐 만 아니라, 저복지로 인한 재생산체계의 위기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복지체계를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사회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을 재생산의 사회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은 국가의 재정정책과 산업정책 산업정책은 전통적으로 시장실패를 명분으로 특정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자원배분에 간여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산업정책의 개념을 실물경제의 잠재성장능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제 정책으로 재정의 할 필요가 있다. 성장잠재력 제고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공재로서 산업인프라 확대를 추구하는 전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산업정책은 재생산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GDP목표와 같은 숫자제시형 정책이 아니라 가치지향적 산업정책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GDP 성장은 사회적 후생을 표현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가치지향적 경제사회발전의 개념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대안적 GDP(GDP+소득분배+삶의 질+환경 등)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을 재활성화 하여, 사회적 소유에 기반한 공적자산을 늘리고 국가가 책임지는 고용안정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이로부터 재생산을 사회화시킬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화 된 재생산체제는 안정적인 사회재생산과 국가재정의 미래조세를 뒷받침할 토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산업정책의 시작은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다음 그림은 취업자 수를 통해 바라본 주요산업 영역의 변화이다. 지난 10년간 서비스업 취업자 수 변화 중 가장 커다란 증가세를 보이는 건 단연 보건 및 사회복지 서비스 업종이다. 서비스업의 제외한 다른 제조업이나 건설업 등의 취업자 수 변동은 거의 없는 편이기 때문에, 보건 및 사회복지 서비스 업종이 전 산업을 통틀어 가장 취업자 수 증가폭이 큰 업종일 것이다.
 
자료: 통계청 KOSIS


여기서 우리가 짚어볼 수 있는 대목은, 이런 추세로 볼 때 가장 고용효과가 큰 보건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이 한국사회 산업변화의 중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2013년 박근혜 정부 초기, 서비스시장 발전계획안 두고 의료민영화 논란이 불거졌었고, 삼성과 같은 재벌대기업이 노리고 있는 다음 ‘먹거리’가 여기서 나올 것이라 진단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규제완화 정책은 바로 이것을 겨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서비스시장 확대와 이에 연동된 노동시장의 수급 변화는 2013년에 나온 맥킨지 한국 2차 성장보고서에서 강조하는 있는 바와 동일한 맥락에 있다. 이 보고서는 낮은 생산성 영역에 초과 공급된 민간서비스 인력을 생산성 높고 노동인력이 부족한 의료보건 영역으로 이동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에서 지방 순회 토론을 하던 중 어느 발제자가 “생계형 서비스업 퇴출전략”이라는 말을 꺼내서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던 사건이 있었다. (대통령 직속기관, “생계형 서비스 업종 퇴출 전략 추진해야”...파문 예상 - 뉴스타파 2014.01.16.) 이처럼 앞으로도 보건의료산업과 사회복지서비스업에 대한 정책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것은 사회재생산 구조에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회복지 서비스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은 이것을 누군가 필요로 한다는 것이고, 개인적으로 해결했었던 이것이 더 이상 개별적으로 감당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산업의 특성상 공적기능이 매우 높기 때문에 공익적 가치를 유지해야할 주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는 시장적 방식의 성장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것이 과연 공익적 가치를 지켜줄 합리적인 방식인지에 대해 우려가 많다. 만약 지금처럼 과거의 방식대로 이 산업분야에 접근한다면, 재벌은 돈 되는 의료산업에서 수익을 내고, 사회복지서비스는 시장화 된 방식의 정부보조금으로 근근이 지탱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부투자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고, 기본적으로 균형재정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경도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공익적 가치는 제대로 구현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정리하면, 현재 가계부채의 위기를 개인의 위기로 보는가 아니면 사회재생산의 위기로 보는가에 따라 처방은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개인의 위기로 보았고, 도덕적 절제, 합리적인 재무관리, 채무조정, 개인구제 및 파산관리 등으로 접근했었다. 그래서 대선공약으로 야심차게 출발했었던 국민행복기금도 실제 이 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제 우리는 시야를 좀 더 넓혀서 사회재생산의 위기로 봐야한다는 주장을 던지고자 한다. 이것은 세계정세와도 관련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계속 치솟는 불평등지수는 사회통합력을 붕괴시키고 있다. 인종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 아비규환의 중동, 통합유럽의 분열 등등, 이런 현상들의 기저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드리워진 세계경제전망의 어두운 그림자와 불평등이 있다. 한국은 이런 위기와 갈등이 기록을 계속 갱신하고 있는 거대한 가계부채로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가계부채 위기를 개인의 위기로만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지난 17년 넘게 내수부양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가계는 이젠 자신을 재생산시킬 동력을 완전히 소진했다. 재벌들에게 이 상황을 반전시켜주길 고대하고 있지만 기약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이제 이 위기를 타개할 적극적 주체는 국가밖에 없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가계부채로 인해 재생산체계가 붕괴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필요가 절실하고 재생산체계의 토대가 되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새로운 산업정책으로서의 적극적인 사회화전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