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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약탈경제반대행동’이 ‘동척’ 의열투쟁 나석주 의사님께 드립니다 조회 : 368
작성자 : 약탈경제반대행동 작성일 : 2019/03/13

 

[3.1운동 100주년] ‘약탈경제반대행동’이 ‘동척’ 의열투쟁 나석주 의사님께 드립니다

March 11, 2019 편집국 1. 칼럼

동양척식주식회사

[아시아엔=홍 성 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

제가 나석주 의사님의 큰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고교 시절 본 ‘국사’ 교과서로 기억합니다. 그때 안 것은 1926년 일제의 식민지 수탈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상대로 “의열” 투쟁을 하시고 끝내 장렬한 산화를 하셨다는 것이 전부였지요.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흐른 뒤, IMF 사태를 당하고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실직한 후 공공근로 등으로 한동안 연명을 하였을 때입니다. 잠시 일을 하던 광복군동지회, 광복회의 사무실과 복도에 늘 걸려 있던 국가보훈처의 달력 속에서 나석주 의사님의 강렬한 얼굴을 처음 보았습니다. 마치 민중미술의 판화 속 인물처럼, 굵은 음영의 선이 얼굴의 윤곽을 만들었고, 짙은 눈썹과 형형한 눈 그리고 두터운 입은 의사님이 지니신 강력한 의지를 고스란히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한번 보고 쉽게 잊혀질 그런 얼굴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시 세월이 한참 흘러, 지금 활동하고 있는 단체의 전신 조직인 ‘투기자본감시센터’에서 활동하면서 나석주 의사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당시 미국계 투기자본 론스타가 천문학적인 외환은행 매각대금을 챙겨 한국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고, 우리 단체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 투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론스타는 여러 가지 불법 의혹이 있는 2002년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부터, 마침내 2011년 4조 원을 챙기고 하나은행에 재매각하기까지, 이른바 ‘먹튀’ 시도를 여러 차례 하였고, 그때마다 우리 단체는 강력히 맞서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그 일환으로 한동안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농성도 하였고,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과 집회를 자주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저와 동지들을 언제나 지켜봐주신 분이 바로 나석주 의사님이셨습니다. 바로 그 자리는 의사님께서 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대한 응징을 하시고 비장한 최후를 스스로 결정하신 자리이며, 의사님을 기리는 동상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 까닭에 의사님께서도 늘 우리 단체와 함께 싸우고 있다는 심정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나석주 의사께서 의열투쟁을 감행하신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와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은 대표적인 식민지 수탈기관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일명 ‘동척’은 1908년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조선과 타이완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고 경제권 이득 착취를 위해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모델로 삼아 설립한 국책 회사입니다. 망국 조선의 국유지는 물론, 조선인의 소유 토지를 ‘토지조사령’ 등의 방법으로 강탈하고, 조선 농민들을 50%가 넘는 소작료로 약탈하여 참혹한 기아선상으로 내몰았습니다. 동척은 강탈한 농토를 조선에 이주한 일본인이나 조선인 대지주 등에 불하하기도 했는데, 그자들도 물론 조선 농민을 수탈하였습니다. 당시에도 “일본인(지주) 1명이 오면 조선농민 200명이 굶주린다!”는 비명과 분노가 온 세상에 가득했습니다.

1906년 설립된 식산은행은 식민지 개발에 요구되는 산업 및 공공대부를 하는 정책금융기관이었습니다. 그들의 대표적인 정책이 ‘산미증산계획(産米增殖計劃)’인데, 실상은 이름과 달리 수많은 조선 농민을 기아로 내몰고 생산한 그 쌀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것을 증대시킨 것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그자들은 일본의 중국과 아시아 침략전쟁을 위하여 한반도 전체를 병참기지화 하는 군수산업 육성을 주도하였습니다.

“세계의 무산대중, 그리고 동방 각 식민지 무산대중의 피와 가죽과 살과 뼈를 짜 먹어온 자본주의 강도제국 야수군(群)은 지금에 그 창자, 배가 터지려 한다. … 민중은 죽음보다 더 음산한 생존 아닌 생존을 계속하고 있다.”

이 글은 나석주 의사께서 산화를 하신 뒤 2년 뒤 결성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東方無政府主義者聯盟)의 선언문 서두입니다. 강도 일본제국주의가 만든 식민지 조선의 풍경이 바로 이와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참담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투쟁에 나선 분이 바로 나석주 의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대표적인 식민지 수탈기관 동척과 식산은행에 대한 의열투쟁에 나선 것입니다.

나석주 의사

나석주 의사께서 투쟁하셨던 시대는 흘러갔지만, 제가 사는 이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강도적 속성’입니다. 그것이 제국주의로 드러나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발현되는 것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떤 이들은 동척과 식산은행은 ‘일본의 것’이라며 반발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당시 그들의 식민지 수탈기관에 종사자 다수는 조선인이었고, 임원과 간부, 그리고 조선인 대지주도 상당수가 있었습니다. 나석주 의사와 같이 일제시대를 살았던 한상룡(韓相龍)이 있습니다. 바로 동척의 발기인, 임원 출신으로 일제시대 대표적인 조선인 금융자본가로서 일생을 호의호식하다가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와 고문, 일본귀족원 의원으로 살다간 자입니다. 그가 살았던 집은 현재 유명한 관광지인 종로 한옥마을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또, 김용주(金龍周)는 바로 식산은행 출신으로서 경상도 지역 대표적인 자본가로 성장,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도의원까지 지냈습니다. 그자가 유명해진 것은 오늘날 유력 정치인 김무성의 애비이기 때문입니다. 찾아보면 동척, 식산은행 같은 식민지 수탈기관의 출신이거나 수탈기관의 조력과 지원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자본가로 성장을 한 자들은 많습니다. 심지어 오늘날 한국에서까지도 승승장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에 당시의 다수 농민들, 노동자들, 또 나 의사께서 분투하라고 외쳤던 당시 2천만 민중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강도 자본주의의 수탈로 인하여 죽음 직전까지 내몰려 고통을 받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오늘날에도 ‘한국은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에서 ‘헬조선(Hell朝鮮)’이란 말이 유행한 지 오래입니다. 우리 단체는 오늘날의 한국과 세계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를 이끄는 것은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거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각국의 금융회사들과 거기에 투자하는 각국의 부유한 크고 작은 자산가계급이며 이들은 오늘날 약탈적인 자본주의의 공동지배자이다. 한국의 경우 보통의 재테크 자산가들만이 아니라 재벌가문 역시 이러한 약탈자 지배블록의 일부로서 가담하고 있다. 동시에,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모두에서 한편에서는 가난과 궁핍이 다른 한편에서는 부와 사치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 심화의 배경에는 약탈적인 경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 오늘날 경제생활의 본질적 특징은 ‘약탈’이다. … ‘약탈적 자본주의’(predatory capital-ism)의 전면화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해서, 우리 단체는 이렇게 호소하며 창립하였습니다.

“…모든 경제가 약탈적인 것은 아니며, 모든 시장경제가 약탈적인 것도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공동체의 번영에 부합하는 생산적인 시장경제가 가능하다. 이러한 사회연대적 경제는 약탈적인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약탈적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그것에 맞설 때만이 시민과 사회공동체가 주인이 되는 생산적인 경제 즉 ‘사회연대적 경제’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이에, 오늘 우리는 약탈경제반대행동(Vampire Capital Hunter)을 출범한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못 뵈어

고인을 못 뵈어도 가던 길 앞에 있네

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찌할꼬?

조선시대 퇴계(退溪)의 시조입니다만, 지금 같은 심정입니다.

나석주 의사님, 감히 말씀드립니다. 저와 제 동지들은 의사님과 분명 다른 시대에 태어났고 다른 형태의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고민과 같은 실천을 하고 있다 믿습니다. 그래서, 감히 청합니다. 오늘도 나석주 의사님과 함께 투쟁하고자 합니다. 우리 투쟁의 이 길을 보우하소서.

 

2019년 2월 18일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 홍성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