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의 제2 인생" (메트로신문) | 조회 : 287 |
작성자 : 약탈경제반대행동 | 작성일 : 2018/01/10 |
"요즘 후배들을 보면 짠해요. 성과 평가기준은 점점 개인 실적에 맞춰가고, 예대마진이 없다보니 보험과 카드, 대출 영업을 더 많이 해야 하죠." 최근 인생 2막을 연 전직 은행원들은 비대면·저금리 시대의 후배들을 안쓰러워했다. 한편으로는 "목적 없이 들어오면 금방 나간다"며 따끔한 충고를 하기도 했다. 이들은 "가만히 앉아 기계에 대체당하지 말고, 신입 때부터 자신만의 길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퇴직 후 자기 회사를 차린 프라이빗뱅커(PB)와 시민단체 운영위원장이 된 전직 지점장을 만났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상황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왔다는 것. ◆ 주판세대의 고민이 시민단체 이끌다 지난 1988년 1월 제일은행에 입행한 김재율 행원은 주판 앞에만 서면 머리가 아팠다. "상고 나온 선배들은 척척 하는 걸, 대학 나온 애들은 처음 만져봤으니 원." 그래도 후생복지와 높은 연봉, 안정성을 생각하며 배워갔다. 지점장 운전기사가 "야, 김 주임, 너는 지점장도 하겠네. 대학 나왔으니까"라고 말 할 정도였다. 그때는 몰랐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며 회사 이름이 바뀌고, 은행도 더 이상 평생직장은 아니라는 사실을. 김재율 약탈경제반대행동 운영위원장은 지난해 12월 SC제일은행 장위동지점장으로 은퇴했다. 그는 신입 시절부터 은행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려고 했다. "자격이 돼 대출해 줬는데 용돈을 받고, 노조 간부가 아는 행원 승진시켜 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봤다. 그래서 1997년부터 2012년까지 노조에 몸을 담았다. 회사가 외국 자본에 흡수되고, 동료들이 잘려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때부터 투기자본에 관심이 생겼다. 퇴직 이후 몸담은 약탈경제반대행동은 지난 2006년부터 손잡은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전신이다. 김 위원장은 "28년 경험으로 쌓은 은행원으로서의 지식을 금융소비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며 "은행이 원하는 영업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만, 나에게 그럴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출세만 생각하면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불완전 판매로 고객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은행원으로서의 공공성을 고민해야 한다. 자신을 단순히 임금노동자로만 여기면, 은행원으로서의 생명이 금방 끝난다"고 충고했다. ◆입행하는 이유를 알고, 버텨라 "요즘 애들이 은행의 현실은 모르고, 안정적인 화이트칼라 생각하고 스펙 높여 지원합니다. 답답한 일이죠." 지난 2002년 씨티은행에 입행해 지난 3월 경남은행에서 퇴직한 PB가 쓴웃음을 지었다. 윤준호 위드리치 컴퍼니 대표는 올해 38세다. 젊은 나이에 PB 경력 10년을 쌓았고, 관리하는 고객 자산규모가 200억원대에 달한다. 이 가운데 80%가 그가 어디 있든 찾아오는 40여명의 고객 자산이다. 윤 대표는 행원 시절, 기회를 마냥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씨티은행에 있을 때, PB를 하고 싶은데 보통은 20년은 다녀야 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 2006년 HSBC가 대구점을 열어서 이직했다"고 말했다. 2013년에 회사가 한국에서 철수했지만, 이력서를 쓰지 않았다. 경남은행이 사람을 두 번 보내 그를 스카우트했다. 고객들은 그가 어디를 가든 따라갔다. 그냥 열심히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아니다. 중요한 건 목적의식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왜 입행하고 싶은지"를 묻는다. 은행이 무엇 하는 곳인지 잘 모르고 들어왔다가 이직하는 후배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는 "큰 점포에 100명 있던 시대가 끝나 지금은 15~20명"이라며, "가속화되는 자동화에 비이자수익 영업 환경이 더해지니, 어서 자기 살 길을 찾으라"고 충고한다. 목적 없이 입행하면 도태되거나 KPI(성과지표) 전문가로 남는다는 설명이다. 윤 대표는 은행원이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방학 때 스펙 높일 생각하지 말고 영업을 하라"고 조언했다. "핀테크 시대에 보험과 카드, 대출 파는 능력이 중요해요. 방학 때 펀드 권유 대행인 등을 하세요. 그게 여러분이 보여줄 수 있는 은행원의 능력이에요. 그럼 면접관이 뽑을 겁니다." 오지혜 올리치 컴퍼니 대표도 외국계 은행 PB출신이다. 개인 고객이 40여명으로 윤 대표와 비슷하다. 그는 씨티은행과 HSBC를 다니며 "백조같은 삶을 살았다"고 회상한다. "처음에는 필요에 따라 고객을 만나러 이리저리 발을 굴렸죠. 그러다보니 사람을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사람을 이해하니 고객의 자산을 진심으로 대하게 됐고, 그 결과가 성공적인 창업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행원 시절 하지 못했던 저소득층 자산 관리 상담을 하고 있다. 회사 다닐 때 한 번밖에 못해 아쉬웠던 탈북자 대상 금융 교육도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 이어간다. 오 대표는 "고객 관계를 잘 만들면 인생 설계에 큰 도움이 된다"며 후배들에게 "버티라"고 말했다. 그래도 은행은 인생 2막을 여는 데 좋은 토양이기 때문이다. "고객은 어떤 은행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과 가족의 삶이 달라집니다. 좋은 영향을 주는 행원이 되어주세요." * 바로가기 : http://www.metroseoul.co.kr/news/newsview?newscd=201608220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