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템임플란트 사건, 사라진 질문과 허술한 외양간 강서구 기자 승인 2022.01.12 13:03 호수 476 방향 잃은 오스템임플란트 횡령사건 회사는 왜 몰랐나 감시는 왜 안 했나 “왜는 사라지고 사건만 남았다”상장사 오스템임플란트에서 전대미문의 횡령사건이 터졌다. 자금관리팀 직원 이모씨가 횡령한 금액은 2215억원, 기간은 1년이 훌쩍 넘는다. 갖가지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상장사란 간판을 달고 있는 회사가 이 사실을 정말 몰랐는가, 내외부 감시망은 작동하지 않았는가, 회계법인과 시중은행, 한발 더 나아가 금융감독 당국은 뭘했는가.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이 한 사람이 수천억원을 횡령해도 까맣게 모를 정도로 허술한 걸까.
그런데 미디어의 초점은 또다시 횡령금액의 출구에 쏠린다. 이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반복할지 모르겠다. 더스쿠프가 오스템임플란트 2215억원 횡령사건의 ‘본질’을 다시 한번 짚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중요한 건 ‘어디에 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빼돌렸느냐’를 검증하는 거다. 오스템임플란트에서 전대미문의 횡령사건이 발생했다.[일러스트=더스쿠프 포토] 연초부터 국내 주식시장이 시끄럽다. 국내 1위 임플란트 기업 오스템인임플란트에서 발생한 2215억원 규모의 횡령사건 탓이다. 횡령액 2215억원은 국내 상장사 횡령사건 사상 가장 큰 금액이다. 이번 사건은 오스템임플란트의 공시로 처음 알려졌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지난해 12월 31일 자기자본 1880억원(2020년 기준)의 91.8%에 달하는 횡령사건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수천억원을 횡령한 이는 오스템임플란트의 재무관리 팀장으로 일한 이모씨다. 공교롭게도 이씨는 지난해 10월 5월 코스닥 상장사 동진쎄미켐의 주식 391만7431주(지분율 7.62%)를 1430억원에 사들인 슈퍼개미였고, 논란이 커졌다. 단순 계산으로 회삿돈을 빼돌린 지 3개월이 지나고서야 회사가 횡령 사실을 알아차린 셈이기 때문이다.[※참고: 이씨의 횡령 시점은 2020년 4분기로 더 빨라졌고, 횡령금액도 처음 공시한 1880억원 아닌 2215억원으로 늘어났다.]
엉뚱한 곳으로 튄 사건의 초점
의문이 쏟아져 나왔다. 회사는 왜 수개월간 횡령사실을 몰랐는가, 수천억원의 돈을 어떻게 상장회사에서 빼낼 수 있었을까, 금융감독기관은 왜 돈의 흐름을 아예 몰랐을까. 어쩌면 이는 중요한 질문이다. 제2, 제3의 횡령사건을 막을 수 있는 ‘방어막’ 구실을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의 초점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이씨가 2215억원을 어디에 썼느냐에 미디어의 관심이 쏠린 거다.
그가 횡령한 돈으로 1㎏ 금괴 851개를 비롯해 45억원 규모의 부동산, 30억원 상당의 리조트 회원권을 구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특히 이씨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497개를 제외한 나머지 금괴가 어디로 갔는지를 밝히는 데 혈안이 됐다.[※참고: 경찰은 지난 12일 이씨가 회삿돈으로 사들인 851개(한국거래소에서 찾지 않은 금괴 4개 포함)를 모두 확보했다. 금괴 354개는 이씨 가족의 집에서 발견했다.]
그래서 더스쿠프는 오스템임플란트 횡령사건의 본질을 다시 짚어보기로 했다. 핵심은 상장사에서 어떻게 수천억원이 쥐도새도 모르게 빠져나갈 수 있었느냐다. ■의문❶ 회계법인 뭘했나 =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횡령이 이뤄진 첫 시점이다. 오스템임플란트의 공시와 경찰 수사에 따르면 이씨가 회삿돈에 손을 대기 시작한 시점은 2020년부터다. 그해 4분기에도 235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했다가 돌려놓은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2215억원의 횡령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동진쎄미컴의 슈퍼개미가 된 지난해 10월이 아닌 지난해 3월이었다.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은 이씨가 회삿돈을 자기 돈처럼 입출금할 때 회사 내부통제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았느냐다. 아울러 외부감사기관인 회계법인이 뭘 했느냐도 중요한 쟁점이다. 상장사인 오스템임플란트는 정기적으로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는 데다 내부통제를 위한 감사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스템임플란트의 내부통제시스템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회계법인의 감사엔 빈틈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회사는 2019년 20명이었던 사내감사실 인원을 지난해 11명(3분기 기준)으로 줄였다. 회사가 감사실 운용비용을 몇푼 줄이려다 수천억원의 횡령사태가 터졌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회계법인의 감사 역시 도마에 올랐다. 자금관리팀에서 일한 이씨가 잔액증명서를 위조했다곤 하지만, 회계법인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회계법인이 인터넷을 이용해 기업의 예금 잔액증명서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무려 15년 전 갖췄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건넨 데이터만 보고 감사를 진행하다가 큰코다쳤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의문❸ 이상거래 시스템 왜 작동 안 했나 = 수천억원에 이르는 회삿돈을 어떻게 이씨의 개인계좌로 옮길 수 있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3월부터 오스템임플란트 법인 계좌에서 본인 계좌로 8차례에 걸쳐 총 2215억원을 송금했다. 한번에 수억에서 수백억원의 돈이 옮겨진 셈이다. 하지만 수천억원의 자금이 계인 계좌로 유출되는 동안 주거래은행의 이상거래 감지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시중은행의 책임론이 일고 있는 이유다.
[※참고: 이상거래 감지시스템은 금융회사가 의심스러운 전자금융거래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체계다. 고객의 정보를 데이터화한 후 평소 금융패턴과 다른 금융거래가 이뤄지면 거래를 중단하거나 고객에게 경고를 한다. 핀테크 발전과 비대면 거래 증가의 영향으로 카드·보험·은행·증권사 등 대부분의 금융회사가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적용 대상은 개인이 중심인데, 최근 들어 기업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작동 안 한 내외부 감시망
주거래은행 측은 법인의 거래는 개인과 달라서 이상 거래를 탐지하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은행 관계자는 “큰 금액의 자금이체가 빈번한 기업의 경우엔 계좌 이체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이상거래를 감지하는 건 어렵다”면서 “이번 케이스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 전산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 자금 이동을 이상거래로 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개인인 이씨가 두차례에 걸쳐 회사 계좌에 315억원을 이체했을 때에도 이상거래 감지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이상거래 감지시스템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은행이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의문❸ 개인계좌와 수천억원 = 금융감독 당국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횡령한 회삿돈으로 활개를 치면서 슈퍼개미란 별칭을 얻었지만 금융감독 당국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 감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주식 동진쎄미켐의 주식 1430억원어치를 한번에 사들였다. 이 거래는 공시대상에 포함돼 금융감독원에 신고절차까지 마쳤다. 이 과정에서 이씨가 밝힌 1430억원의 자금 마련 방법은 ‘주식투자 외’였다. 아무리 슈퍼개미라도 한 종목에 투자하기엔 많은 금액이다. 금융감독 당국이 투자금의 출처만 확인했어도 횡령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는 얘기다. 오스템임플란트 횡령사건을 키운 건 허술한 국내 금융시스템이었다. [사진=뉴시스]금융감독 당국 관계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한해 동안 들어오는 주식 대량보유상황보고서만 3만건이 넘는다. 시스템으로 위반 가능성이 있는 공시를 한차례 걸러낸 후 심사할 수밖에 없다. 이씨가 동진쎄미켐의 주식을 매수했던 건은 공시기한 내에 보고가 이뤄진 정상적인 투자행위였다. 시스템에서 걸러지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얼 할 수 있는가. 금융당국이 대량보유상황보고서만 쳐다보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허술한 시스템 재정비해야
언뜻 그럴듯한 항변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금융감독 당국의 허술한 시스템을 인정한 말이다. 공시기간 내에 보고만 제대로 하면 자금의 출처가 불투명해도 금융감독 당국의 감시망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여서다.
이처럼 오스템임플란트 횡령사건의 뒤엔 상장사의 모럴해저드와 회계법인·시중은행의 허술한 감시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의 감시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2215억원의 출구에만 집중했다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또 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공동대표는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의 내부통제·외부감시·사후관리 등 모든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점”이라며 “이번 사태를 기업의 내부통제 기능을 강화하고 이상 징후 발견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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